기자와 가족 – 바쁜 일상 속에서 관계를 지키는 법 (23편)

기자라는 직업은 언제나 긴장과 시간 싸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뉴스와 사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항상 바삐 움직여야 합니다. 저도 어느덧 기자로 살아온 지 15년이 넘었지만, 가끔은 제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나는 과연 좋은 배우자이자 부모인가?”

분명 기자라는 직업은 제게 많은 것을 줬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안목,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기회,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람.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저’는 자주 희미해지고, 가족과의 관계 역시 종종 균열을 겪곤 했습니다. 기자라는 역할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오늘 이 글을 통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 생활의 현실: 끝없는 마감과 예측 불가능한 시간

기자의 하루는 결코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하루 종일 사건과 사고를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수집하다 보면, 밤늦게야 집에 돌아오곤 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은 이 직업에서 현실 그 자체입니다. 기자가 된 첫해에는 이런 생활에 적응하느라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중요한 생일, 학교 행사, 혹은 단순히 저녁 식사조차도 스케줄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내는 “우리도 당신의 시간표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고 농담 섞인 말을 하곤 했지만, 그 말 속에는 깊은 서운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아빠, 오늘도 바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저와 보내는 시간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가족과의 여행 계획을 취소했을 때였습니다. 당장 처리해야 할 특종이 생겼고, 저는 모든 걸 뒤로하고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뒤돌아보니 아내와 아이들은 말없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작은 시작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직업이 중요해도, 가족이 없으면 제 삶의 의미도 반쪽짜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약속을 했습니다. “기자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 되자.” 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한 걸음씩 실천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우선, 일정을 가족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가족들과 앉아 한 주의 일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주에는 수요일 저녁에만 시간이 될 것 같아.” “금요일엔 출장이 있지만 토요일 오후엔 꼭 함께 시간을 보낼게.”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가족들이 제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또한 집에 돌아와도 일에 쫓기지 않는 시간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핸드폰과 노트북을 꺼두고, 오직 가족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함께 영화 한 편을 보거나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는 순간은 저에게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이런 변화가 반갑게 느껴졌는지, 아이들이 “아빠가 요즘 우리랑 더 많이 놀아줘서 좋아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큰 동기를 얻었습니다.


가족과 일 사이의 균형을 찾으며 배운 점

기자는 항상 균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너무 일에 치우치면 가족이 멀어지고, 그렇다고 일을 소홀히 하면 생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가족과 함께한 작은 시간의 중요성입니다. 직장에서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핑계로 가족과의 시간을 무심히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족은 단순히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죠.

둘째, 감사와 소통의 힘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충분히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며, 더 많이 감사의 말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도 기다려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서 힘이 난다.” 이런 말 한마디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입니다. 과거에는 모든 일이 중요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구분하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때로는 큰 특종을 놓칠지라도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족은 나의 원동력

이제는 가족이 제 직업에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때로는 나를 지치게 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저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바쁜 삶 속에서 소중한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보세요. 가족과의 시간을 만들고, 그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한가운데서, 기자로서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영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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